이어폰과 유튜브

2018. 1. 7. 00:49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집중이 안되는 것인가?

 재수를 할 때 종종, 자주, 가능한 한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고 공부를 했었다. 이것을 가지고 엄마와 자주 논쟁을 했었다. 음악을 처리하는 데에는 분명 뇌가 사용되고, 이게 공부를 하는 중에 사용되는 뇌와 겹치면 겹쳤지 절묘하게 아슬아슬하게 서로 멀티테스킹이 될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부하는 것이 지루했고, 지루함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느니 청각적으로 계속 자극을 주어 나를 입시공부에 매달려 있게 해 주는게 낫지 않겠냐는 논지로 반발했다. 논쟁은 수학문제를 풀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었지만, 사실 나는 과목을 가리지 않고 국어 비문학이나 영어 긴 지문을 읽을때도 이어폰을 꼽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야 좋았으니 상관없지만, 정말 득실이 어떠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문제는 요새 만화를 그릴 때 집중력이 자꾸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유튜브와 이어폰. 좀 더 넓혀보자면 유튜브를 보며 긴장이 풀릴 대로 풀린 내 정신상태가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재수가 끝난 직후부터 나는 가능한 한 편해지려고 노력했다. 나에대한 자신이 생겼다.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은 자만이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불편함의 대부분은 내가 겪지 않아도 될 헛고생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저런 것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노력없이 그대로 깊게 잠수했다. 내키는대로. 그리고 몇가지 문제가 생겼지만 예측하던 범위 내였다.

 존경하는 파파 조지 "Filthy" 프랭크의 말마따나, 나도 인터넷을 기웃거리는 자신없고 불안해하는 애새끼중 하나다. 본인이 재능이 없음에도 특별해지고싶어하는, 거기에 더해 나는 노력없이 빛나고 싶어한다. 나 자신으로써 있던 그대로를 지키려고 하는.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편안한 생활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편안한 내 자신으로 남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은데, 그 쏟아낼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마구 쏟기 시작하다보면 얻어 걸리는게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법이다. 하면 뭐든지 되는데, 문제는 최대정지마찰력에 있다. 이제까지 있어온 내 태도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 나는 내가 바뀌길 원하는가? 가만히 있으면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이 계속 될 것이다. 언젠가는 부패해서 무너지겠지만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난 정신적으로, 철학적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투실투실 살을 찌워가며 내 안락한 자폐의 공간에서 놀고먹을 수 있다. 난 무섭다. 입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변증법적 도약을 외치면서 나 자신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고 있는 역한 구더기가 하나 있다. 구더기는 파리로 변태하니 별로 좋은 비유는 아니다. 동굴 영원은 요오드 농도를 조작해도 유생에서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니 동굴 영원이 더 적절하겠지. 난 조별과제 조사를 미루고 만화를 그리다가, 그마저도 손에 안잡혀서 집어치우고 유튜브를 보다가, 나를 표현해야한다는(난 특별하고 기록될 가치가 있으니까) 압박감에 못이겨서 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쓰고있다. 디스코드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을까? 별 일 없으면 낮을 항상 게임에 때려박는 이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게임 사이와 사이에 항상 난 유튜브를 틀고 있으니 그게 더 문제겠지.

 글의 방향이 너무 치우쳐졌는데, 사실 이어폰도 큰 변수중 하나다. 귀에 무언가가 껴서 주변 공간과 격리되어있는 이 기분이 나를 졸리고 게으르게 만드는 듯 하다. 게임중에야 집중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가니 이게 도움이 되지만, 만화를 그릴 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는다. 불레는 음악이 방해가 된다고 고백한다. 만화를 그릴때 음악을 듣고 안듣고를 구분하여 생각해보는 작가들의 말을 찾아본 적이 없다.

 졸리다. 자야지. 잠이 늘어간다. 스트레스가 늘어간다. 내 인생은 아주 수직낙하하여 금방이라도 박살이나서 진물이 주변에 줄줄 흐를 것 같은데. 주변의 말마따나 군대를 가서 죽을 똥을 싸면 바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구역질나는 꼰대라고 말하기도 힘든게, 내가 가장 활발하게 창작에 매달릴 때는 항상 상황적으로 구석에 몰려서, 괴로워서 뒈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때였다. 입시가 가장 최근의 것이었고. 아마 철학이나 창작은 현실의 위협에서 발동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난 모른다. 아니면 알고싶지 않거나 부정하고싶다. 난 편안하고 싶어. 노력없이 인정받고싶어.

 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아주 괴로워지는 시점이 온다. 거기서 나를 더 밀어넣는 것이 아주 힘들고 어렵다. 여기서 더 힘을 주면 내 몸에 문제가 생기는게 아닐까? 싶은데, 어떤 면에서는 자해를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난 오기로 버티고 악바리 근성이 있는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닌 것 같다. 무얼 하던간에 80% 이상의 최선은 다 하지 않는,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주 몸에 배어있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운동을 하는 중의 고통을 통해 본인이 무언가 육체적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그런 정신이 깊게 박혀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추구에는 끝이 없을 터고, 언젠가는 현 상태에 만족하게 될 텐데 그냥 지금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싶다. 나에게 비만이 있었다면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마음가짐은 비만인 사람들에게는 아주 건강하지 못하니까.

Savage As Fuck also known as No C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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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긍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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