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느낌있는 제목이나 이름을 짓는 것을 참 좋아한다. 굳이 내용을 채우지 않더라도 막연하게나마 어떤 이미지나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들 말이다. 비슷한 것으로 녹음하지도 않을 앨범의 앨범명이랑 앨범아트, 곡 이름을 채우는 것도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게으른 것이다. 이런건 땀흘려 만든 음반과 소설을 마무리할 때 허락되는 파이 위의 체리와 같은 보상의 개념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과정 없이 체리만 먹고싶다는 것이니깐.


 오늘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언뜻 들렸던 어떤 가요 멜로디에서 '우린 알면서도 얼어죽을거야' 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지금은 멜로디를 다 잊어버려서 떠올랐던 그 순간에 했던 '언젠가 반드시 이걸로 노래를 만들어봐야지' 는 불가능해졌지만, 기록해놓는다면 언젠간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분명 내 머리를 한 번 지나갔던 정보니깐.


 중학교 땐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웃긴건 이야기를 쓰는 것 보다도 등장인물들의 어감 좋은 이름들을 늘어놓는 걸 더 좋아했는데, 그 때 나왔던 이름 중 하나가 심미안이다. 보통명사를 이름으로 쓰는게 정말 닳고닳은 생각인건 알지만, 이름이 미안이라는 캐릭터는 참 좋은 것 같다. 심지어 성이 심씨여서 이름과 성명이 두 보통명사로 이루어져있는 구조가 참 좋아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있는 이름이다. 일전에 하너의 그림방송을 보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누군가가 그 이름이 참 좋아서 자기 만화 주인공으로 쓰고싶다고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 이름을 뺏기는건 썩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순전한 내 느낌을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아주 기뻤다. 심미안 말고도 인도인 캐릭터의 이름을 아멘으로 해놓으면 어떨까 싶었었는데, 이건 별로 공감을 못받았다.


 그러고보면 낯부끄러워서 어디에 써본 적 없는 글귀가 있는데, 나는 이름이 가장 짧은 형식의 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가 작명가에게 세 가지 이름을 가져왔을때, 해창이라는 이름을 보고 이게 내 이름이라는 것을 바로 느끼셨다고 했다. 분명 그 사람의 이름과 특징은 어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이름은 뜻도 중요하고 어감도 중요하고 대상과의 어울림도 중요하니깐, 어떤 정서를 표현하려는 시와 통하는 무언가가 있기도 하다. 따져보면 이름이란 것은 시보다도 더욱 함축적이고, 또 일상적이고 실용적이어야하는 까다로운 요구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 어려운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쓰다보니까 느낀건데, 상업인디 아티스트들에게 돈을 받고 힙한 밴드명이나 앨범명을 지어주는 것도 하나의 돈벌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으면 지었지 남에게 지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미학의 깊이가 얕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음... 그래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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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긍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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