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러운 의심:


1. 시행착오는 우리를 더 나은 상태로 데려간다.

 과연 그러한가? 그렇다면 경험의 양이 늘어날 수록 우리는 반드시 좋은 사람으로 수렴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살았음에도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것은 명백한 반례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경험이 인간에게 작용하는 방식이 간단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 뿐인가? 이렇게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적게 경험하고 많이 배우고, 누군가는 많이 경험하고 적게 배운다. 우리는 동일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다. 잘못된 길로 이끄는 경험들도 많이 있으며, 성찰이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보장또한 없다. 아하, 그렇다면 시행착오는 우리를 더 나은 상태로 데려가지 않는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아가지 않고 헤매고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의 경험이 현실을 대표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는 수 밖엔 없는 것이군.


2. 우리는 타고난 대로 살아진다.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주장은 아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능동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그 선택과 결정은 우리의 경향성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선천적으로 결정된 경향성을 꺾는 결정은 힘들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유전자에서 결정된 형질과 자라난 환경의 영향을 부정하고 스스로의 경향성을 자유자재로 재정의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이 생각도 철회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 그런 이는 없었다. 다들 형성된 대로 살아진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의미의 노예:


 (선략) 그리하여 나의 어색한 생활은 깊은 의미를 가진 꼭 들어맞는 근사한 퍼즐이 된다. 얕은 차원에서의 적용은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강박적인 유형화는 암기에 도움이 되니깐. 하지만 이는 점차 현실에 대한 나의 해석에 걸림돌이 되고 만다. 필요 이상의 유형화와 과대해석은 나를 필요없는 역할극으로 끌어들인다. 나는 주변의 것들에게 빠르게 추측하여 만든 엉성한 역할들을 덮어씌우고, 거기에 맞춰서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한다. 그리고 그 극이 깨어지고나면 공황이 찾아온다. 내가 정의한 것들이 사실 틀렸음을, 그리고 내가 잘못 행동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는건 어렵고 고약한 일이다.


우울한 사람들이 좋아요:


 정확히 왜인지는 모르겠다. 스스로 의미부여를 해보자면 나는 사람의 삶을 신화형[각주:1]으로 해석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기승전결이 없이 밋밋하게 흘러온 인생에 인간은 안일하고 지루해진다. 망가진, 그리고 그 고장을 극복한 사람들이 매력적이다. 우스운 것은 내가 그런 부류에 들지 않는 것같은 생각이 종종 든다는 것이다. 나는 곱게 자라 편하게 살면서 힘든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들 곁에서 기만을 일삼는 그런 인간이 된다. 

  1. 릭앤모티 부부클리닉 에피소드에 나오는 표현이다. 부부가 서로 상호작용을 할때 정의내린 정신적 이미지를 실체화시켜 그들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그것이 내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던 무언가를 세게 꼬집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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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긍정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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