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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7.11.09 허를 찌르는 통찰 1
  8. 2017.10.12 똥같은 번데기
  9. 2017.09.27 아 맞아 2
  10. 2017.09.12 저건 엄마호랑이야 1

뚱딴지

2018. 3. 7. 22:17

모든 것에 대해서 추상화된 관념을 가지고 대응한다.

일관된 규칙이 존재하길 기대하며 행동한다.

지속적으로 최적화를 하려한다.

내가 내리고 또 내렸던 결정에 대해서 정당화를 해야한다.


사람의 얼굴을 읽는 것.

어색하지 않게 대화하기.

다수 앞에서 말하기.

감정을 표현하기.


나 자신을 자폐아로 보고있다. 내가 세워놓은 가치 바깥의 것을 비웃을 때마다 나 자신이 비참하게 그려진다.

위선, 위선, 위선, 위선, 위선, 위선, 위선, 거짓, 거짓, 거짓, 거짓, 거짓,

끔찍하고도 끔찍하고도 끔찍하고도 끔찍하여서 도무지 기분이 나아지질 않는다.

가슴 깊은곳에서 끈끈하고 따가운 것이 끓어 올라오는 느낌이 마구 든다.


정말 내가 나은걸까? 정말 내가 나은걸까? 정말 내가 나은걸까?

난 그렇다고 믿는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방식은 아주 보기좋은 최적의 곡선을 그리고 있어야한다.

나의 약점은 일시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조금의 경험만 있다면 금방 해결 될 것이다.

나와 나를 닮은 사람들을 빼고 세상엔 별로 가치있는 사람들이 없다.

단순하고 아둔하고 편협한, 생각한다는 느낌이 별로 안드는 치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부득불 그 알량한 테두리를 그어놓고는 또 불안해져서 마구 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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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번역기

2018. 1. 9. 18:47

 어제는 글을 써놓고 한시간정도인가 내가 써뒀던 글들을 일본어로 번역시켜서 듣고있었다. 자연스러운 일본어는 아니겠지만 내 생각들이 일본어로 울려퍼지는게 참으로 신기한 기분이 들어서 마냥 듣고만 있었다. 아마 지브리스튜디오와 어렸을 적에 엄마가 보던 일본드라마 탓이겠지만 나에겐 일본어 문자보다도 말소리가 훨씬 더 익숙하고 정겹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느끼던 것이지만 일본어는 한국어와 굉장히 유사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일단 말의 운율부터 비슷한 리듬이고, 어순도 비슷해서 일본어 문장을 들으면서도 한국어 문장 어디인지를 어렴풋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아, 이 단어가 이 부분을 뜻하는 거구나' 를 알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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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느낌있는 제목이나 이름을 짓는 것을 참 좋아한다. 굳이 내용을 채우지 않더라도 막연하게나마 어떤 이미지나 느낌을 전달해주는 것들 말이다. 비슷한 것으로 녹음하지도 않을 앨범의 앨범명이랑 앨범아트, 곡 이름을 채우는 것도 한 번 꼭 해보고 싶다. 물론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게으른 것이다. 이런건 땀흘려 만든 음반과 소설을 마무리할 때 허락되는 파이 위의 체리와 같은 보상의 개념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런 과정 없이 체리만 먹고싶다는 것이니깐.


 오늘 헬스장에서 운동하면서 언뜻 들렸던 어떤 가요 멜로디에서 '우린 알면서도 얼어죽을거야' 라는 가사가 떠올랐다. 지금은 멜로디를 다 잊어버려서 떠올랐던 그 순간에 했던 '언젠가 반드시 이걸로 노래를 만들어봐야지' 는 불가능해졌지만, 기록해놓는다면 언젠간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분명 내 머리를 한 번 지나갔던 정보니깐.


 중학교 땐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웃긴건 이야기를 쓰는 것 보다도 등장인물들의 어감 좋은 이름들을 늘어놓는 걸 더 좋아했는데, 그 때 나왔던 이름 중 하나가 심미안이다. 보통명사를 이름으로 쓰는게 정말 닳고닳은 생각인건 알지만, 이름이 미안이라는 캐릭터는 참 좋은 것 같다. 심지어 성이 심씨여서 이름과 성명이 두 보통명사로 이루어져있는 구조가 참 좋아서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있는 이름이다. 일전에 하너의 그림방송을 보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누군가가 그 이름이 참 좋아서 자기 만화 주인공으로 쓰고싶다고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 이름을 뺏기는건 썩 달가운 일은 아니지만, 순전한 내 느낌을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아주 기뻤다. 심미안 말고도 인도인 캐릭터의 이름을 아멘으로 해놓으면 어떨까 싶었었는데, 이건 별로 공감을 못받았다.


 그러고보면 낯부끄러워서 어디에 써본 적 없는 글귀가 있는데, 나는 이름이 가장 짧은 형식의 시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할아버지가 작명가에게 세 가지 이름을 가져왔을때, 해창이라는 이름을 보고 이게 내 이름이라는 것을 바로 느끼셨다고 했다. 분명 그 사람의 이름과 특징은 어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이름은 뜻도 중요하고 어감도 중요하고 대상과의 어울림도 중요하니깐, 어떤 정서를 표현하려는 시와 통하는 무언가가 있기도 하다. 따져보면 이름이란 것은 시보다도 더욱 함축적이고, 또 일상적이고 실용적이어야하는 까다로운 요구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 어려운 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쓰다보니까 느낀건데, 상업인디 아티스트들에게 돈을 받고 힙한 밴드명이나 앨범명을 지어주는 것도 하나의 돈벌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으면 지었지 남에게 지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미학의 깊이가 얕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음... 그래도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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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과 유튜브

2018. 1. 7. 00:49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집중이 안되는 것인가?

 재수를 할 때 종종, 자주, 가능한 한 항상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틀고 공부를 했었다. 이것을 가지고 엄마와 자주 논쟁을 했었다. 음악을 처리하는 데에는 분명 뇌가 사용되고, 이게 공부를 하는 중에 사용되는 뇌와 겹치면 겹쳤지 절묘하게 아슬아슬하게 서로 멀티테스킹이 될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부하는 것이 지루했고, 지루함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지느니 청각적으로 계속 자극을 주어 나를 입시공부에 매달려 있게 해 주는게 낫지 않겠냐는 논지로 반발했다. 논쟁은 수학문제를 풀면서 음악을 듣는 것이었지만, 사실 나는 과목을 가리지 않고 국어 비문학이나 영어 긴 지문을 읽을때도 이어폰을 꼽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야 좋았으니 상관없지만, 정말 득실이 어떠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문제는 요새 만화를 그릴 때 집중력이 자꾸 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유튜브와 이어폰. 좀 더 넓혀보자면 유튜브를 보며 긴장이 풀릴 대로 풀린 내 정신상태가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재수가 끝난 직후부터 나는 가능한 한 편해지려고 노력했다. 나에대한 자신이 생겼다. '나는 할 수 있어' 라는 생각은 자만이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불편함의 대부분은 내가 겪지 않아도 될 헛고생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저런 것을 거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노력없이 그대로 깊게 잠수했다. 내키는대로. 그리고 몇가지 문제가 생겼지만 예측하던 범위 내였다.

 존경하는 파파 조지 "Filthy" 프랭크의 말마따나, 나도 인터넷을 기웃거리는 자신없고 불안해하는 애새끼중 하나다. 본인이 재능이 없음에도 특별해지고싶어하는, 거기에 더해 나는 노력없이 빛나고 싶어한다. 나 자신으로써 있던 그대로를 지키려고 하는.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렇게 편안한 생활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편안한 내 자신으로 남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쏟아내고 싶은데, 그 쏟아낼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방법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딘가에 마구 쏟기 시작하다보면 얻어 걸리는게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제시하는 방법이다. 하면 뭐든지 되는데, 문제는 최대정지마찰력에 있다. 이제까지 있어온 내 태도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 나는 내가 바뀌길 원하는가? 가만히 있으면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이 계속 될 것이다. 언젠가는 부패해서 무너지겠지만 그 날이 오기 전까지 난 정신적으로, 철학적으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투실투실 살을 찌워가며 내 안락한 자폐의 공간에서 놀고먹을 수 있다. 난 무섭다. 입으로는 다른 이들에게 변증법적 도약을 외치면서 나 자신은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고 있는 역한 구더기가 하나 있다. 구더기는 파리로 변태하니 별로 좋은 비유는 아니다. 동굴 영원은 요오드 농도를 조작해도 유생에서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니 동굴 영원이 더 적절하겠지. 난 조별과제 조사를 미루고 만화를 그리다가, 그마저도 손에 안잡혀서 집어치우고 유튜브를 보다가, 나를 표현해야한다는(난 특별하고 기록될 가치가 있으니까) 압박감에 못이겨서 블로그에 오랜만에 글을 쓰고있다. 디스코드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을까? 별 일 없으면 낮을 항상 게임에 때려박는 이 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게임 사이와 사이에 항상 난 유튜브를 틀고 있으니 그게 더 문제겠지.

 글의 방향이 너무 치우쳐졌는데, 사실 이어폰도 큰 변수중 하나다. 귀에 무언가가 껴서 주변 공간과 격리되어있는 이 기분이 나를 졸리고 게으르게 만드는 듯 하다. 게임중에야 집중력이 비약적으로 올라가니 이게 도움이 되지만, 만화를 그릴 때는 별다른 도움이 되질 않는다. 불레는 음악이 방해가 된다고 고백한다. 만화를 그릴때 음악을 듣고 안듣고를 구분하여 생각해보는 작가들의 말을 찾아본 적이 없다.

 졸리다. 자야지. 잠이 늘어간다. 스트레스가 늘어간다. 내 인생은 아주 수직낙하하여 금방이라도 박살이나서 진물이 주변에 줄줄 흐를 것 같은데. 주변의 말마따나 군대를 가서 죽을 똥을 싸면 바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구역질나는 꼰대라고 말하기도 힘든게, 내가 가장 활발하게 창작에 매달릴 때는 항상 상황적으로 구석에 몰려서, 괴로워서 뒈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때였다. 입시가 가장 최근의 것이었고. 아마 철학이나 창작은 현실의 위협에서 발동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난 모른다. 아니면 알고싶지 않거나 부정하고싶다. 난 편안하고 싶어. 노력없이 인정받고싶어.

 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아주 괴로워지는 시점이 온다. 거기서 나를 더 밀어넣는 것이 아주 힘들고 어렵다. 여기서 더 힘을 주면 내 몸에 문제가 생기는게 아닐까? 싶은데, 어떤 면에서는 자해를 하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난 오기로 버티고 악바리 근성이 있는 그런 사람은 전혀 아닌 것 같다. 무얼 하던간에 80% 이상의 최선은 다 하지 않는,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주 몸에 배어있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운동을 하는 중의 고통을 통해 본인이 무언가 육체적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그런 정신이 깊게 박혀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추구에는 끝이 없을 터고, 언젠가는 현 상태에 만족하게 될 텐데 그냥 지금 만족하면 되는 것 아닌가?싶다. 나에게 비만이 있었다면 어땠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마음가짐은 비만인 사람들에게는 아주 건강하지 못하니까.

Savage As Fuck also known as No C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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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청합니다

2017. 11. 21. 03:25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좋다. 편하게 말을 꺼내고 머뭇거리거나 막혀도 실망하지 않는 청중이 있는 것은 훌륭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교환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는 감동을 준다. 진이 빠지도록 대화를 해본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오래 전 그때에 난 눈물을 흘려가며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 쏟아내었었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 나는 안도하던 제자였다는 것이고, 지금 나는 불안해하는 동지라는 점이다. 난 그의 뒤를 쳐다보면서 그에게 성인의 후광을 그려줬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 그 과정이 나에게는 놀랍게만 다가온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이건 거짓말일거야.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을 속여내어 우스꽝스런 박제로 만드는 일에 전문적인 사람이다. 간만에 제대로 된 대어를 낚아 쾌재를 불렀지만 끝까지 내색하지 않은 것 뿐이지.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이건 일어난 일이고 나는 신호를 받았다. 이 일들이 앞으로 나에게 계속해서 어떤 의미로 다가올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난 오늘 더 앞으로 나갔다. 모든 발전 곡선이 그렇듯 나도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그 평균치를 조금씩 높여나가면 된다. 나는 이제 필요한 것을 다 갖추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뉴턴일수도 이카루스일 수도 있다. 나는 트로츠키도 아르하도 될 수 있다. 언제까지고 옳은 길을 찾아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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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리

2017. 11. 19. 13:59
http://jeonlado.com/v3/detail.php?number=4808

분노에 차서 내뱉던 단어에서 언중의 재분석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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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를 찌르는 통찰

2017. 11. 9. 21:54

"woman try to sell sex and man try to sell autism."

트위치에서 흔히 여성 스트리머들은 본인의 여자다움을 방송에 많이 이용하고 남성 스트리머들은 본인이 (주로 게임에서) 남들과 차별적으로 행할 수 있는 힘을 과시한다. 왜냐면 시청자인 남성들의 흥미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다만 그것을 섹스와 자폐를 판다라고 딱 잘라서 내뱉으니 그 틀 안에 들어가있는 당사자로써는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몰입하는 모습을 자폐적이라고 여기고 비웃는 태도가 틀렸다고 볼 수 있을까? 잘못된 접근이긴 하다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폐증을 구글링하고, 위키백과에서 자폐증의 기준에 대해서 읽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놀려대는 방구석 폐인들이 사실상 자폐적으로 기능하는 면이 있기는 하니까.

여기서 문제는 내가 얼마나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정서적으로 무뎌졌는가이다. 내가 너무 둔감해졌을까? 인터넷의 자극적인 문화에 물들어 나는 소수자에게 상처를 주는 코드에만 웃게 되는 걸까? 내가 평균적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실제로는 무지하고 폭력적인 다수에 불과한 걸까? 얼마나 우리는 옳게 살아야 하는 건지,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지 못했던 가상의 소수자를 우린 어디까지 가정하면서 입을 놀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나를 자조적으로 일컫는데 남은 신경써줘야 한다는 태도에서 아마 모순점이 생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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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같은 번데기

2017. 10. 12. 04:00

 정말 난 디자인 수업 레포트에 나무 몇그루 더 심자는 얘기밖에는 못하는 걸까. 9시 반에 배그를 키면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네' 라고 생각했다. 12시 11분에 처음 워드파일을 적어놓으니 뭐라도 할 수 있는것 같은 의욕이 생겨서 유튜브를 다시 켰다. 2시 33분에 도실 유튜브의 구독정보를 뒤졌다. 중간에 언더테일 애니버서리 뮤직 컴필레이션을 들었다. 카연갤을 들어갔다. 그래도 저번처럼 4시까지는 끝내야지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지금은 4시다. 이제 두줄째 써내려간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쓰는것은 전혀 고통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낸 후의 후속 과정은 걱정이 없다. 하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난 지금 3일째 하기로해놓고 아무것도 안한 이 과제가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 10시까지 끝낼 수 있을까. 이미 잠을 자는 것은 포기하는게 맞는것 같다. 이런 씨발. 이런 씨발. 이런..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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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아

2017. 9. 27. 23:21

강대 재수할때, 강남별관 와이파이는 네이버만 들어가면 이상한 가짜 백신 다운로드 링크로 빠져서 블로그를 못봤다.

하도 답답해서 192.168.0.1로 접속하니 공유기 관리창이 잠겨있지 않더라.

이것저것 뒤지다가 DNS서버가 이상한 곳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음.

DNS서버를 자동으로 했는데, 인터넷이 안되는게 아닌가.

예전에 중국에서 어떤 ip찾기 사이트같은곳에서 42.42.42.42가 SKT 데이터센터인걸 알고있었기에

42.42.42.42로 연결시켜봤다.

갑자기 중국어로 된 이상한 페이지가 떴다.

그 뒤로 192.168.0.1이 한동안 접속이 안되었다.

난 내가 끔찍한 실수를 했다고 생각되어서, 정말 무서웠고 도망가고 싶었다.

핸드폰을 닫고 열심히 자습을 했다.

몇시간 뒤 다시 핸드폰을 켜보자 와이파이가 몇배는 빨라지고, 블로그도 접속할 수 있게 되어있었음.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42.42.42.42는 중국에서 한국 SKT로 연결하는 무슨 망인가 싶고

아무튼간에 이전 가짜 백신으로 연결시켜주는 사기 DNS보다야 훨씬 나은 연결을 하게 된 것.

그래서 난 나 자신에게 아주 만족하였다.

이상했던 점은 그 이후에도 몇 번 누군가가 DNS를 원래의 사기꾼 ip로 바꿔놓았다는 것인데...

9월이 가까워지면서 폴더폰으로 바꿔버려서 그 이후의 일은 잘 모르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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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엄마호랑이야

2017. 9. 12. 13:45
 저번에 티비에서 가족들이 동물원에 가는 장면을 본 일이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호랑이 사육장 안을 가르키며 열성적으로 저 호랑이는 아빠일것이며 저 호랑이가 어떤 호랑이의 아기일거라고 겉보이는 생김새에 따라 이런저런 설명을 부모에게 했다. 그것을 보노라니 참 기분이 좋았다. 어린 나이일 때부터 패턴을 읽어내려는 성향이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윈스턴의 영문 대사 "I can see a pattern developing" 이 비슷한 이유로 참 좋다. 'Another victory for the reason' 도 같은 맥락이다. 혼돈속에서 어떻게해서든 설명가능한 규칙을 찾아내려는 그 의도와 욕구. 나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결국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 믿는다. 우리에겐 과학이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이제까지 과학자들이 이뤄놓은 업적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과학의 잔상이다. 과학은 자연을 가장 간결한 규칙으로 설명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다. 과학만큼이나 긍정적이고 열성적인 방향성이 있을까? 언제든지 자기자신을 개선시키기위해 저버릴 준비가 되어있는 그 태도는 얼마나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던 간에 결국 성공으로, 완성으로, 승리로 나아게 된다. 과학의 존재가 인간의 불완전함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진정시켜주는 것이다. 연구자집단이 아무리 편향되고 가치지향적이라고 해도, 그들이 검증가능한 사실을 섬기는 집단이라면 그들은 결국 진리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원래는 '자신의 직감을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표현하려고 애쓰는 나' 라는 표현을 담으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결국은 과학 예찬으로 끝이 났다. 이렇게 보니 나는 인간 자체때문에 우울해하고 진리를 상상하며 들떴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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